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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a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Economic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the director of the Center for Distributive Justice. His research and teaching interests are in distributive justice, income distribution and inequality, social choice and voting, and fair allocation theory. He teaches Microeconomics, Public Finance, Political Economy, and Economics and Philosophy.
2011-12-29
[한겨레 기사돌려보기][세상 읽기] BBK, 디도스… 아직 살아있는 문제들 / 한정숙
[한겨레 기사돌려보기][시론] 정봉주 유죄판결은 법적 착시현상 / 박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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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8
[한겨레 기사돌려보기]“DJ가 ‘MB가 똑같긴 뭐가 똑같아’ 역정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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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7
[경향신문: 최장집칼럼] 서민들 삶의 현장에서 복지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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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4
[PRESSian] 북한 바로알기, 한반도 분단의 현실과 통일에 대한 서적들
교전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미국은 곧바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 체제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특히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와 핵무기가 한국, 일본, 타이완 등 우방을 위협하는 일을 좌시하지 않겠다." 일본 요코스카의 미군 제7함대 소속 항공모함이 동해와 남해 인근의 공해상으로 이동했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에 중국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중국은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권력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으며, 북한 내 소요 사태를 빌미로 미국을 비롯한 제3국이 내정 간섭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 중국 역시 2011년 시험 운항을 했던 자신의 항공모함을 황해로 전진 배치했다.
2012년 4월 16일. 정작 난리가 난 곳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었다. 4월 11일 총선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던 남한은 북쪽에서 들려온 총성에 패닉에 빠졌다.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 곳은 주식 시장이었다. 연초 1800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던 주가 지수는 곧바로 곤두박질쳤다. 외국인들의 '팔자' 러시로, 정부의 외환 시장 방어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가파르게 올랐다.
2012년 4월 18일. 북한의 평양 주변에서 산발적인 교전이 여전히 계속되면서 한반도의 긴장은 더욱더 고조되었다. 중국군이 김정은의 승인 하에 압록강을 건너리라는 군의 발표가 있었다. 미군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미국은 김정일 사후 북한에서 내란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만든 '작전 계획 5029'를 만지작거렸다. 그에 따라 미군과 한국군 일부가 북한으로 넘어가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정부는 부인도 인정도 하지 않았다.
2012년 4월 19일. 이날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부가 한국 거주 미국인의 철수를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사재기로 대형 할인점의 물건이 동이 났다. 특히 서울 강남의 동요가 심했다. 인천국제공항은 한국을 탈출하는 외국인, 내국인이 섞여서 북새통을 이뤘다. 대학생과 시민 몇몇은 미국과 한국의 개입은 곧 전쟁으로 이어진다며 '인간 방패'를 자처하고 판문점으로 가는 길목에서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2012년 4월 20일. 검은 금요일이었다. 100만 원이 넘던 삼성전자 주가가 40만 원대로 주저앉았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주가 지수는 이미 500대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금값이 폭등했고, 기름을 비축하려는 인파로 주유소가 장사진을 이뤘다. 이 와중에 일부 기업이 자산을 해외 이전한다는 소문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나돌았다.
2012년 4월 23일. 평양뿐만 아니라 압록강 인근에서도 교전이 있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중국군의 개입에 반대하는 북한군의 내부 소행이라는 주장, 미국이 사주한 반(反 )김정은 파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엇갈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하 벙커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남쪽에 미칠 여파를 최소화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생업에 종사하라."
2012년 4월 24일. 청와대 고위 인사를 포함한 정부 주요 인사의 가족 일부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사진이 트위터로 공개되었다. 정부는 '괴소문'을 차단한다며 주요 포털 사이트를 비롯한 인터넷 서비스를 무기한 중단했다. 인터넷 신문이 서비스를 중단한 틈에 몇몇 보수 언론은 "평양 만수대의 김일성 동상이 끌어내려졌다"고 보도했다. 물론 오보였다.
황사보다 더 짙은 공포가 한반도를 뒤덮었다. 잔인한 4월이었다.
ⓒ프레시안(손문상) |
2011년 12월 19일 정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닷새가 지났다. 지난 닷새 동안 한국의 주요 언론은 일제히 '북한 붕괴' 가능성을 점검했다. 1990년대 중반(김일성 주석 사후)에 한반도를 떠돌던 '북한 붕괴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새롭게 등장한 '김정은 체제'가 군부의 지지를 받지 못해서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앞에서 거친 상상력으로 써본 가상 시나리오는 진짜 북한 붕괴가 일어난다면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본 것이다. 이 가상 시나리오는 북한 붕괴를 점치는 이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점을 강조한다. 북한에 문제가 생기면 남한이 곧바로 직격탄을 맞으리라는 사실이다. 시나리오가 보여주는 가상 상황이 '오버'라고? 항상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는 법이다.
미군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백날 폭격해도 미국 시민의 일상생활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북한에서 총탄이 오가는 순간 한국 시민의 일상생활은 풍비박산이 난다. 왜냐하면, 휴전선은 서울에서 고작 한 시간, 평양은 고작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books'가 2011년 송년호의 귀중한 지면을 '북한 제대로 알기'를 위해서 할애한 것도 이런 중대한 착각을 교정하기 위해서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도, 복지와 시장의 갈등도, 생태와 개발의 긴장도 모두 한국이라는 공동체-사회가 온전할 때의 얘기다. '전쟁의 추억'을 다시 불러와서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건가?
다 같이 죽자고? 아니, 혹시 전쟁이 나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미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첫 번째 질문 : 북한은 과연 붕괴할 것인가?{#8974834502#}
▲ <정세현의 정세 토크>(정세현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
그런 먼지 뒤집어쓴 책 중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은 남북 교류의 산 증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원광대학교 총장)이 쓴 <정세현의 정세 토크>다. 2008년 7월 15일 첫 회를 시작으로 총 60차례 진행된 <프레시안>의 인기 연재 '정세현의 정세 토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이제훈 <한겨레21> 편집장의 평을 들어보자.
"외교, 안보, 통일 분야 담당 기자들 사이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제대로 비판하는 하나의 가이드라인' 구실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회자된다. (…) 술자리 토론에서 의견이 다른 지인과 사이에 '마음의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이 책은 전문 서적 열 권 이상을 읽은 뒤에 느낄 지적 희열과 개안을 독자들에게 안겨줄 것이라 믿는다."(☞관련 기사 : 칠흑같은 MB 시대, '정세의 등대'를 켜라!)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언론에서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얘기하자마자 제일 먼저 이 책을 집어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우선 정세현 전 장관이 북한 붕괴를 놓고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 전 장관은 이렇게 간명하게 북한 붕괴를 전망을 일축한다.
"3대 후계자로 알려진 3남 김정은은 나이가 여러 경험이 부족하고 능력이 별로 없을 테니까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 역사에서만 봐도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젊은 세자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에 선왕을 승계하면 중신들이 그 젊은 임금을 잘 보필합니다. 그렇게 조선조 500년을 끌고 왔어요.
김정일 위원장도 조선 시대 중신에 해당하는 원로들이 보필해서 지금 여기까지 온 겁니다. (…) 북한 체제가 자유민주주의적 선거로 정권의 정통성이 인정되는 체제라면 김정은 체제는 오래 못 갈 겁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 정권의 정통성은 선거가 아니라 혈통으로 결정되고 있어요. 북한은 사실상 왕조라고 봐야 합니다.
왕조는 혈통으로 정통성을 규정하는 거고, 중신들이 버텨주면 그냥 가는 겁니다. 이걸 무시하고 후계자가 나이가 어려서 붕괴할 거라고 말하는 건 너무 섣부릅니다. 북한을 비판할 때는 독재 국가니 왕조니 비판하면서, 전망할 때는 민주주의 잣대를 들이미는 건 모순입니다. (…) 북한 체제의 장래를 전망하려면 체제 위협 요인만 따질 게 아니라 체제 지탱 요인도 같이 분석하고 비교해야 합니다." (<정세현의 정세 토크>, 65~68쪽)이런 분석에 미국의 한국 현대사 연구자 브루스 커밍스 노스웨스턴 대학 교수도 공감을 표시한다. 커밍스 교수는 20일 미국 군사 전문지 <디펜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원로 지도층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다시 김정은 후계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을 이끌어왔다"며 "이들이 김정일과 김정은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 "북한 원로 지도층이 김정은 체제 전환 이끌 것")두 번째 질문 : 북한은 몰상식의 '깡패 국가'인가?"나는 김정일을 증오한다. 김정일은 피그미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8991274110#}
▲ <김정일 코드>(부르스 커밍스 지음, 남성욱 옮김, 따뜻한손 펴냄). ⓒ따뜻한손 |
북한은 혼란스러운 나라다. 그러나 그 나라도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나름의 논리를 가진 나라다. 마치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500년이나 지탱되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인 조선 왕조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운영되었듯이 말이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김정일 코드>(따뜻한손 펴냄)는 북한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하는 책이다.
커밍스는 이 책에서 "북한이 일체의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 강압적 국내 정치"를 가지게 된 책임의 상당 부분을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잿더미"로 만들어 놓은 미국의 "무서운 파괴"에서 찾는다. 커밍스는 "전쟁이 잠잠해진 1951년 봄 이후에도 미국은 2년간 북한에 맹공을 퍼부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우리가 침묵하는 이 폭격으로 300만 명의 북한 주민이 희생당했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에서 북한 체제를 옹호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북한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북한에는 정치범들이 있는가? 물론이다.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최소한 10만 명이나 된다. 강제노동수용소가 있는가? 심지어 최고 간부라고 할지라도 통치자의 의지를 거스르면 가족들과 함께 격리된 지역에서 고된 육체노동에 시달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 체제가 인간의 자유를 향상시킬 것인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그러나-"조선 민족을 위한 자유"처럼-자유라는 말이 외국 침략자에 대한 독립적인 입장을 의미하기도 하는 한국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신랄한 판단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민족적 자유 독립은 예수가 탄생한 무렵부터 같은 장소에서 통합과 통일성을 유지해온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인 덕목이다.
(…) 이 나라는 처음 40년은 식민 통치로, 그 다음 60년은 민족 분단과 전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으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불안정한 국가다. (…) 때때로 북한에서는 죽음의 그림자와 악에 근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구세대들의 괴로움에 시달린 듯한 얼굴에서도 이런 감정이 스며 나온다.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느낀다. 첫째는 명치끝의 통증이다. 나는 그들이 옳다는 것과, 지독한 폭력이 압도했던 20세기에서도 가장 처참한 전쟁으로 인해 겪은 고통을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미국인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더 두려운 느낌으로 미국인들 대부분이 1950년대 초 그들의 이름으로 자행했던 전쟁의 참극을 알지 못하고,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정일 코드>, 251~253쪽)그리고 커밍스는 요덕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가족과 함께 10년간 갇혀 있었던 강철환(현재 <조선일보> 기자) 씨의 경험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되묻는다. 미국은 몰상식의 '깡패 국가'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운가?
"(강 씨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10년간 수용된 전과가 평양 거주나 대학 입학 그리고 엘리트 지위로 진입하는 데 반드시 장애물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언한다. 반면에 미국은 감옥에 흑인으로 가득 찬, 강제노동수용소를 가지고 있다. (…) 그곳에는 모든 흑인 청년들의 25퍼센트 이상이 감금돼 있다. 이것이 경찰국가인 북한의 핑계거리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을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미국인들이 먼저 그들의 내부 도시가 가진 병폐에 대해 무엇인가를 시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김정일 코드>, 142~143쪽)세 번째 질문, 북한은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가?{#8990106885#}
▲ <냉전의 추억>(김연철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의 <냉전의 추억>(후마니타스 펴냄)은 60년의 냉전 기간 동안 "선을 넘어 길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전쟁의 공포'가 짓누른 60년간의 역사를 수십 개의 일화를 통해서 살펴보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는 것은 (남과 북을 막론하고) 그 공포를 통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이들의 실체다.
예를 들어서, 1994년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7월 8일)하기 직전 무슨 있었는가?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년 6월을 이렇게 회고했다.
"클린턴 대통령하고 그 때 대판 싸웠습니다. 그때 내가 싸우지 않았다면 아마 '남북 전쟁'이 일어났을 거예요."한국도 모르게 미국이 전쟁을 검토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연철 교수에 따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은 거짓말이다." 당시 미국 클린턴 행정부 핵심 당사자 세 명이 쓴 책을 보면, 김 전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반대로 증언한다.
"북한에 대한 제재를 시종일관 밀어붙인 것은 김영삼 대통령 자신이고, 한국은 미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었다."북한과의 전쟁 공포로 '사재기 열풍'을 불러온 1994년 여름의 난리는 김영삼 정부가 만든 것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6월 6일 "북한이 무모한 모험을 감행한다면 자멸과 파멸의 길로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청와대는 북핵 보도를 늘려 달라는 부탁을 방송사에 했고, 6월 9일부터 방송은 전쟁 위기, 북핵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이 난리는 일단락이 되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멈추지 않았다.
"카터의 방북이 결정되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카터의 방북은 실수'라고 비난했다. (…) 김영삼 정부는 협상의 길목을 차단하면서, 북핵 문제를 위기의 길로 몰아갔다. 성숙한 국민 의식을 안보 불감증으로 몰아세웠으며, 행정망을 통해 사재기를 결과적으로 부추겼다. (…) 강남 부유층이 집중적으로 보여 준 사재기 열풍은 '만들어진 공포'였다." (<냉전의 추억>, 149쪽)그나마 이렇게 '만들어진 공포'로 전쟁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2000년 남북 정상 회담과 같은 평화를 향한 여정으로 반전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이른바 '평화 세력'의 노력이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피스메이커>는 책 제목대로 '피스메이커'의 숨은 노력을 생생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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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스메이커>(임동원 지음, 중앙북스 펴냄). ⓒ중앙북스 |
"첫째, 세상이 변했습니다. (…) (1960~70년대) 한국은 자유 진영의 첨단 기지로서 공산 침략에 대처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국제 냉전은 끝났습니다. (…) 2차 세계 대전 후에 분단되었던 나라들은 모두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반공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반도에서도 냉전을 종식시키고 분단을 극복하여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모든 사상과 정책은 그 시대의 아들입니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낡은 시대의 사상과 생각을 계속 고집한다면 낙오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 둘째, 이제 북한의 변화는 불가피합니다. 지금은 세계사의 대전환기입니다. (…) 북한의 변화를 슬기롭게 유도하여 안보 위협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하는 '적극적 평화'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싸우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는 부전승전략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두 가지 이유, 두 가지 상황 인식에 따라 이제 저는 평화를 지키는 소극적인 피스키퍼의 위상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나가는 피스메이커로서의 소명을 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피스메이커>, 164~166쪽)"공산주의 비판과 대공전략론을 강의하고, 자주국방을 외치며 군사력 증강 계획을 주도하시던 강경한 반공 보수주의자가 왜 그렇게 변하셨습니까?" 재향군인회가 주최한 강연에서 적잖이 실망스럽다는 투로 질문을 던졌던 한 청중에게 임동원 전 장관이 한 답변이다. 이렇게 '피스메이커'가 만들어졌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남쪽이 변해야 북쪽도 변한다.
마지막 질문, 한반도에 희망이 있는가?{#8936485652#}
▲ <북조선 연구>(서동만저작집간행위원회 엮음, 창비 펴냄). ⓒ창비 |
"한국에서 평화, 복지, 경제의 새로운 도약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관계에 있으며, 체제의 성격과 발전 수준이 다른 북조선의 경우도 남북이 함께 해야 바람직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 평화, 복지, 개발을 연계한 '남북 협력 발전' 구상을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준비해야 할 때다." (<북조선 연구>, 374쪽)정세현 전 장관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통일 비용을 계산하는 데 늘 투자 비용만 계산했지 분단 시대에 불가피하게 지불해야 했던 분단 비용을 빼지 않은 것이었어요. 통일이 되면 분단 비용은 통일 비용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통일 비용을 계산하려면 투자 비용에서 분단 비용을 빼야 순투자 비용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럴 빠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 7000만이 넘는 국내 시장을 가지고 남쪽은 하이테크, 북쪽은 노동 집약적 산업을 발전시키면 최근의 중국처럼 고속 성장도 가능합니다. 요새 청년 실업 때문에 고민인데 남이나 북이나 일자리가 늘어나는 건 당연한 결과고요. (…) 남북이 경제 교류, 협력을 하고 남북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요." (<정세현의 정세 토크>, 26~30쪽)서동만 교수, 정세현 전 장관이 말하는 방향은 '몽상'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현실로 이뤄야 할 '과제'다. 그런 길을 닦지 않고서는 한반도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2013년 6월 15일. 남북 정상이 제주도에서 만났다. 앞서 4월 15일 북한 정부는 핵무기 개발 포기를 선언했다. 이번 정상 회담은 이런 북한의 선언에 맞춰서 좀 더 긴밀한 남북 간의 교류 협력 현안을 조율하고, 더 나아가 세계에 선언하는 자리의 성격이 컸다. 한편, 이 자리에서 남측은 제주 해군 기지 건설을 중단하고,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다.
2013년 7월 15일. 정부는 북한의 에너지난 해결을 위해서 남측에서 제조한 풍력 발전기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서해안 일대에 풍력 발전 산업 단지를 조성하고, 거기서 생산한 풍력 발전기를 해로를 통해서 북한으로 운반할 계획이다. 이런 발표에 맞춰서 북한은 핵발전소 건설을 전격 중단했다.
2013년 8월 15일. 김정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뉴욕 유엔 총회에서 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북한의 변화 노력을 설명하면서 국제 사회의 각종 경제 제재를 풀어줄 것을 호소했다. 한국 정부가 이런 북측의 입장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이날 유엔 총회에서는 전격적으로 북한 지원을 위한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2013년 12월 17일. 국제 사회의 지원으로 북한의 경제 사정이 급속도로 호전되면서 북한 체제가 안정되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이날 김정은 부위원장은 개성처럼 남한 기업이 들어오는 경제 특구를 북한 곳곳에 다섯 곳 이상 만들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남북 대학의 상호 학문 교류를 제안하며, 일단 북한 대학생 수백 명의 남쪽 유학을 건의했다.
2014년 1월 1일. 김정은 부위원장이 2014년을 '희망의 행군' 원년으로 선포했다. 김 부위원장은 남측과 국제 사회의 지원에 각별한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불발된 남북 단일팀을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브라질 월드컵에서 보게 되리라고 장담했다.
한편, 남북 정부는 수년간에 걸쳐서 남북의 국문학자들이 공동으로 제작해 2013년 발표한 <겨레말대사전>에 맞춰 교과서, 공문서의 맞춤법을 바꾸기로 결정하고, 실무 작업에 들어갔다. 이런 움직임에 호응해 남쪽의 몇몇 출판사는 <겨레말대사전>에 맞춰서 편집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함께 읽기<정세현의 정세 토크>(정세현 지음, 황준호 정리, 서해문집 펴냄) <김정일 코드>(브루스 커밍스 지음, 남성욱 옮김, 따뜻한손 펴냄) <냉전의 추억>(김연철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피스메이커>(임동원 지음, 중앙books 펴냄) <북조선 연구>(서동만 지음, 서동만 저작집간행위원회 엮음, 창비 펴냄)브루스 커밍스의 <김정일 코드>와 함께 북한 체제의 성립 과정을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책은 서동만의 <북조선 사회주의 체제 성립사 1945-1961>(선인 펴냄)이다. 서동만의 이 책은 전 세계 북한 연구자의 필독서로 자리 잡은 역작이다. 심지어 북한의 연구자도 이 책을 참고한다는 후문이다. 이종석의 <새로 쓴 현대 북한의 이해>(역사비평사 펴냄), <북한의 역사>(이종석·김성보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백학순의 <북한 권력의 역사 : 사상, 정체성, 구조>(한울 펴냄)도 현대 북한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 꼽힌다. 현재의 남북 관계를 '분단 체제'의 틀로 분석한 백낙청의 다음의 작업도 한반도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지침이 된다. <흔들리는 분단 체제>(백낙청 지음, 창비 펴냄) <한반도식 통일, 현재 진행형>(백낙청 지음, 창비 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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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2
[PRESSIAN] 김근식 경남대 교수와 김창수 전 청와대 행정관 좌담회
[전문가 좌담] "김정일 만났던 박근혜가 조의 표명하면…"
<프레시안>은 19일 북한 및 남북관계 전문가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와 김창수 전 청와대 행정관의 긴급 좌담회를 열고 김정일 사망 이후의 정세 전망과 향후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을 짚어봐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한 이번 대담에서 패널들은 김 위원장의 사망이 북한에서 급격한 변동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적으며, 한국 정부는 오히려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이날 좌담회 전문.
▲ 김정일 사망을 특별방송으로 보도한 북한 <조선중앙TV> 방송화면. |
"52시간 조용했던 북한, 위기관리 체제 정상 작동 증명"
프레시안 :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는 하루 뒤 발표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틀이 지나 알려졌다. 52시간의 공백 동안 북한의 움직임은 어땠을까.
김창수 : 현재까지의 언론 보도를 보면 그 동안 북한은 내부 체제 단속을 위한 점검 시스템을 만들고 김정일의 사인을 밝히는 후속 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52시간의 공백은 오히려 북한의 위기관리 체제가 잘 작동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정일 사망 이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관련된 정보가 잘 통제되는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근식 : 그 사이에 당이나 국방위원회, 군의 엘리트들이 대책을 논의했을 텐데, 가장 큰 이슈는 김정은 후계체제로의 순탄한 이행, 그를 중심으로한 권력 이양, 주민 동의나 대외 특이동향 점검 등이었을 것이다. 52시간 동안 의견 조율이 합의되고 끝난 상황에서 사망 소식이 발표됐기 때문에, 큰 사건이었지만 초동 대응은 잘 했다고 사후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그동안 중국, 러시아와 조율에 들어가 김정은 후계 체제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암묵적으로 이끌어내는 작업을 했을 것이라고 본다. 대외적 지지를 얻고 대내으로 권력이양을 순탄한 진행했다는 자신감을 확보한 측면이 있다. 반대로 52시간 동안 남쪽은 몰랐다는 것은 굉장한 문제점으로 보여진다.
프레시안 :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중국 측에 사전 통보가 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가?
김창수 : 단정하긴 힘들지만 현재 북중관계를 고려할 때 52시간 동안 북한의 위기관리 체계가 작동됐다면 중국과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망 직후가 아니더라도 발표 전에 긴급조치를 발표하겠다 정도는 통지됐을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94년 김일성 사망 시에는 남측에 사전 통보가 왔었나?
김근식 : 당시도 남북이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핵문제로 긴박한 상황이었고 2000년 정상회담을 한 이후에나 화해협력이 돼 조문단이 오고갔다. 따라서 94년 당시 상황상 사전 통보는 무리였고, 다만 남측 정보당국은 알고 있었을 수 있다. 두 차례 정상회담 이후 많은 사람이 오고가고 북측에 개성공단까지 있는 현재 상황에서 눈치 못 챈 건 국정원 등 정보라인이 북한에 대해 장님이 됐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김창수 : 다른 시각으로 보면, 기본적으로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최고지도자의 유고 동향은 우리 안보에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온갖 촉수를 세우고 있는 건 분명한데 정보를 세세히 얻을 수 있느냐는 달리 봐야 한다. 예전 관례를 보면 김정일이 80일 동안 안 나타난 적도 있었고 그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를 경우도 많았다. 며칠씩 안 나타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우리 측이 항상 즉각 파악한 건 아니었다.
이번에 특별방송을 하겠다고 발표할때까지도 몰랐는데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이 예를 들어 핵문제 관련 발언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긴급방송을 사전 예고할 때도 있어서, 이번에도 그런 식이라고 예측했을 수 있다. 또 한미 정보당국이 그 동안 김정일의 건강 상태에 대해 대체적으로 4~5년 생존이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 못한데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망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에 가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정보능력 부족이 대통령의 행보에까지 영향을 미친데 대해서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일부 보도에는 타살설, 테러설, 정변설까지 나오는데.
김창수 : 북한의 발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수는 있다. 개인적으로 북한의 발표는 사실이라 본다. 김정일이 건강 이상으로 사망했을 것이라 보는데, 그간 건강 이상설에 대해 많이 확인된 부분이 있었고, 김정일 사망 원인이 만약 건강 이상이 아닌 다른 요인이라면 52시간 동안 소식이 잘 관리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또 우리나 미국 정보당국이 그것을 모를 수 없었을 것이다.
"외국 조문 안 받기로 한 것, 94년 조문 논란 영향 미친 듯"
프레시안 : 북한은 외국의 조문단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김일성 사망 당시에도 같은 입장이었나?
김창수 : 당시에는 그런 언급이 없었고 통상적인 과정을 거쳤다. 이번에 안 받겠다는 것은 김일성 이후 발생했던 조문 파동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한다. 그때처럼 김정일 사망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이 사망 자체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도 한 시름 덜어주는 측면도 있다.
한편으로 중국에 사전에 알려줬다는 가정 하에 생각해보면, 중국 측의 조문단을 비공식적으로 받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체제 안착 과정에서 북중이 서로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국도 김정은 체제의 안착이 필요하고 북한도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향후 북중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징표 측면에서라도 받을 확률이 있다. 당장은 공개하지 않겠지만 정치적 필요에 따라 추후 공개하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본다.
김근식 : 조문단 안 받겠다는 게 특이한 사안인 것은 맞다. 정상적이라면 조문단 왕래는 다양한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외교의 장이다.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호상(好喪)이 아니기 때문인듯 하다. 김일성 사망도 급작스러웠지만 83세로 장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70세도 채우지 못했다. 두 번째로, 국가영도자의 죽음을 맞은 북한의 분위기가 94년과 비교했을 때 사뭇 차분한 분위기다. 당시처럼 애도의 물결이 넘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 게 아닌가 싶다.
프레시안 : 북한의 붕괴를 바라는 이들은 체제의 취약성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조문단의 방문을 거절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김창수 : 조문단을 받으면 평양에 가서 북한의 통제를 벗어나 사회 곳곳를 뒤지는 게 아니다. 취약성이 노출되지 않는다. 조문단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제한된 사절단이라 그런 분석과는 큰 관련이 없다. 가령 북한이 아리랑 공연을 할 때 관광객들을 많이 받았고 관광객들은 조문단보다 훨씬 많은 곳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체제 취약성론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프레시안 : 김정일 위원장이 2008년 9월 뇌졸중으로 한번 쓰러졌는데 그때야 말로 김정일이 곧 사망할 것이란 얘기가 많았고 현재는 회복됐다는 분석이 우세한 상황이었는데.
김근식 : 잘못된 진단을 내린건 아니고 2009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당시 대통령 주치의가 김정일을 장시간 관찰한 결과 직무수행에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중국의 다이빙궈(戴秉国) 국무위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방북했다. 현정은 회장도 4시간 동안 김정일을 만났다. 위키리크스가 김정일이 지난해 줄담배를 피웠다는 외교전문도 공개했다.
김정일의 최근 몇 년간 대외 활동과 올해 중국·러시아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가 회담을 한 것을 보면 업무 수행에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사망한 것은 기차에서 심근경색이 발생했고 응급처지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 체제, 어디로 갈 것인가?
프레시안 : 김일성은 1945년부터 1994년까지 49년간, 김정일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7년을 통치했다.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로 치면 거의 40년이다. 84년 생인 김정은은 2010년 후계자로 지명됐는데 김정일이 없는 북한은 이제 어디로 갈까?
▲ 김근식 경남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문제는 김정은의 위치와 리더십, 카리스마, 정치적 정당성의 정도는 1994년의 김정일보다 약하다는 사실이다. 김정일은 20년 넘게 후계자 준비를 해 왔다. 전반적 영역에서 경험을 쌓아 당의 리더십을 장악했고 1991년 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하면서 군 통제권도 확보한 상황이었다.
김정은은 짧게 보면 작년 9월부터 채 2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그것도 김정일의 후광을 업고 현지지도를 다녔다. 내년에 강성국가를 만들어 가야하는데 김정일이 사라진 공백기에 김정은이 경제 차원에서 주민들을 독려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북핵 문제도 북미협상은 재개되겠지만 최고지도자가 결정을 내릴 시점이 있다.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UEP)을 어떻게 할 것이냐 평화협상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백날 강석주, 김계관이 해봤자 결국엔 김정일이 결정해주는 건데 이제 구심점이 없어지면면서 결정은 미뤄지고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이 있을 수 있다.
프레시안 : 협상파과 강경파가 대결할 때 중재 역할로서 리더십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김근식 : 김정은의 후견 그룹이 당내 엘리트를 얼마나 장악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내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대중들에게 설명하고 이끌고 선두에 서서 선전할 수 있으냐를 보면 취약하다. 둘째, 정치 엘리트 내부의 갈등이다. 작년 9.28 당대회 이후 뜨는 별이 있고 지는 별이 있었다. 뜨는 별로는 리용호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최룡해 당비서가 급부상했고, 지는 별로는 김영춘 정치국위원, 오극렬 정치국 후보위원 등이 있다. 장의위원회도 '지는 엘리트'의 순번은 뒤다. 이 엘리트 사이의 알력을 김정은이 잘 조절하지 못하면 중장기적으로 갔을 때 내부적 불안정성은 취약하지 않을까 싶다.
김창수 : 첨언하자면 김정일 체제는 후계 체제에 대한 개념과 논리를 만들고 실제 시스템을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 성립도 되지 않았던 후계체제 논리를 만들어 나갔고 이를 바탕으로 1980년대 이후 후계자로 등극했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나오기 전에 북한 연구자 사이에 벌어진 논란은 과연 3대 세습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였다. 세습, 집단지도체제, 과도 체제에서 3대 세습으로 가는 이론이 각각 제기됐다. 이제 3대 세습으로 간 상황이라면 후계체제로 갈 수 밖에 없다고 했던 당시 분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후계체제를 정당화하는 개념과 논리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이를 바꾸고 집단지도체제로 가려면 또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야 해서 결국은 3대 세습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게 당시 주장이었는데 현재를 보면 맞아떨어진 셈이다. 또한 김정일이 후계체제에 대한 개념부터 시스템까지 만들었자면 김정은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에서 올라타는 방식으로 가기 때문에 선대와 달리 압축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이미 최근 몇 년간 김정은 체제의 틀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틀 자체는 유지가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의 이념 갈등처럼 정치 중심 노선과 경제개발·실용주의 사이의 갈등이 북한 내에도 있어왔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국가영도자의 역할을 김정은이 어느 정도로 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프레시안 : 1994년 당시 김정일이 김일성의 3년상을 치르면서 대외관계를 동결시켰는데 앞으로도 북한이 수세적으로 갈 것인지 궁금하다.
김근식 :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이 확고한 역량과 리더십, 정책적 경륜을 100% 습득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상당 기간 테크노크라트에게 결정을 위임할 수 있다. 북핵 문제는 강석주, 대남정책은 김양건, 경제는 최영림 등 각 영역에서 김정은보다 전문 역량이 있는 이들에게 위임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김정일이 결심한 바에 따라 움직이던 이들이라 자신들이 결정한 적이 없어서 과거와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이러한 배경 하에 테크노크라트와 김정은 모두 과감하게 결정을 못해 미뤄질 가능성이다. 실기(失機)하는 것이다. 앞으로 북미협상을 지켜봐야 알겠지만 그렇게 흘러가면 북한도 대외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내적으로 통치의 정당성 강화에 집중하면서 대외정책은 김정일이 공언한 정도를 지켜내는 수준에서 상황을 보자는 정도로 갈 수 있다.
▲ 김창수 통일맞이 집행위원. ⓒ프레시안(최형락) |
앞으로도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는 유지될 것이다. 주목할 점은 올해 1월 후진타오(胡錦濤 )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결과다. 당시 두 정상은 남북대화 유지 및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을 하기로 했는데 결실을 맺지 못했다. 최근 몇 차례 북미접촉 통해 UEP 동결 합의와 영양 지원까지 합의된 것은 그 정상회담의 연장선상에 있다.
문제는 내년이 국제사회에서 모든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 행사하는 국가들의 리더십 교체기라는 점인데, 그 시기에 북한이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 것인가에 있다. 현재로서 그 가능성은 유동적이다. 북한이 현재의 수준은 유지해도 새로운 환경에 대해서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프레시안 : 국내 언론들은 김정은의 리더십이 약하면 군부가 들고 일어날 수도 있고 탈북자가 증가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김근식 : 군부가 최고지도자에 저항하는 것은 북한의 수령제 구조에서는 불가능하다. 군부가 따로 독립해 국방위원장이나 최고사령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방위원회의 정치국 상무위원 등은 사실 당 사람이면서 군에 가있기 때문에 군이 자기의 당과 분리된, 후보자와 분리된 이해관계 때문에 후계 체제에 저항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다만 김정일이 후계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형식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2009년 헌법을 개정해 국방위의 권한을 강화하고 국방위원장을 영도자로 규정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최고인민위원회에서 김정은, 리용호, 최룡해 등은 국방위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번 장의위원회 명단을 봐도 당, 정치국 인사들이 전면에 섰고 국방위 위원들은 뒤로 밀렸다. 국방위를 중심으로 통치하기엔 김정은이 아직 맡고 있는 직함이 없어서 배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창수 : 북한의 기본 권력구조상 군부가 최후까지 체제를 유지하는 수호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재 체제에서 이탈하리라는 발상은 북한 연구자 입장에선 타당성이 없다.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내세우면서 군이 모든 결정과정에서 우위에 있던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과정으로 봐야 한다. 최근에 이러한 경향이 정상화됐고 이는 김정일을 호칭할 때 당 명칭을 앞세우고 군 직함을 뒤로 빼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미국과 중국의 향후 움직임은?
프레시안 : 중국·미국의 향후 움직임은 어떻게 될까? <뉴욕타임스>는 오늘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경고했는데.
김근식 : 중국은 공식적으로 애도를 표명했고 94년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김일성 사망에 애도를 표명한 것처럼 미국도 유사하게 갈 것이다. 중요한 점은 지난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통제할 수 없는 군사적 긴장은 피하자고 합의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북한과의 협상을 진전시켜서 미국이 다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해야 북한의 불안정성을 완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에 정치적 급변이나 소요사태는 중국과 미국 둘 다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김창수 :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에 미국이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적절한 관리를 해야 할 필요성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내년에 미국도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북한과 적극적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불확실한 상황이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
때문에 적극적이지도, 악화되지도 않은 현상 유지 국면이 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 정부의 반응도 호들갑보다는 냉철하게 관찰하는 편에 가깝다. 미국은 지금까지 유지해온 대화를 좀 더 시간을 두고 추진하지 않을까 한다. 중국 역시 변방에서의 불확실성을 원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미국의 대북 접근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이라는 의견과 현상 유지로 갈 것이라는 분석이 각각 나왔는데, 극소수 사람들은 미국이 북한을 무너트리길 기대하기도 한다.
김근식 : 중국이 있어서 쉽지 않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면 그럴 수 있겠지만 북중관계가 전략적 협력관계로 격상된 상황에서는 어렵다. 미국이 그렇게 나오려면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이 최고조에 달해 방아쇠를 당기면 터진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니다. 군사적 임계점이 와야 현실화될 것이다.
김창수 : 미국이 동북아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대중정책이다. 한국의 일부 세력은 미국이 압박하고 군사조치를 강화하는 게 희망상황일 수 있지만 대중정책 추구하는 미국 입장에서 북한 압박이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그런 압박이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북중관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만을 독립적 변수로 놓고 압박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한국 정부, 조문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 이날 좌담회를 진행한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김근식 : 가장 중요한 건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이다. 김정일이 사망한 오늘은 일단 통상적인 국가안전보장회의, 군 공무원에 대한 경계령을 내렸다. 남북관계가 4년 동안 중단되고 교착되는 것을 반복해왔는데 김정일 사망으로 이를 돌파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모멘텀으로 삼을 창조적인 지혜가 이 대통령에게 있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예컨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당시 남북관계의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도 김양건이 조문단으로 왔다. 그래서 이 대통령을 만나고 나중에 정상회담 합의까지 갔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지도자가 사망했을 때 그 시점에서 돌파구가 마련되는 게 역사적 현실이었다. 이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관리할 독자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면 오히려 이번이 기회다.
프레시안 : 적어도 차분하게라도 조의를 공식적으로 표명해야 한다는 것인가.
김근식 : 조문단을 받지 않으니 조의나 유감 표명도 할 수 있고 조전을 보낼 수 도 있다. 통일부나 현대아산 명의 등 수위를 조절할 수도 있다. 남북관계를 위해 북한을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겠다는 신뢰의 시그널을 보내면 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내년 핵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을 초청했었고, 기자회견 때마다 이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전직 두 대통령이 각각 만나 합의를 도출했던 상대다. 94년 상황과는 다르다. 그 동안의 남북관계 개선 상황을 감안하면 전향적인 표명으로 신뢰 개선이 가능하다.
김창수 : 정부는 우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최우선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 지금은 비정상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평상시에 수습될 수 있는 남북 간의 사건도 수습되지 않는 상황으로 발전, 확산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철저히 위기관리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북한 상황을 냉철하게 주시하고 북한의 상황이 남한으로 확산되는 걸 막아야 하는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둘째로 국민들이 군사적 충돌이 발생해 남북관계의 위험으로 번지는 것을 염려하는데, 오늘도 주가가 요동을 쳤다. 과거 남북관계에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면 주가가 하락했다 반등하면서 '큰손'들만 이익을 챙기곤 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국민들만 피해를 보는데 현재 글로벌 경제 위기의 장기화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상황을 잘 관리해 위험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조문도 이 원칙과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남북간의 상황도 악화되지 않고 내부적으로 국론이 요동쳐서도 안된다면 이를 충족시키는 것은 정부가 의젓한 태도로 조의를 표명하는 게 바람직하다.
프레시안 : 조의 표명이 남북관계를 개선할 호기하고 했는데 국내 정치만 보면 상당히 답답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김근식 :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사이에 대결 구도가 생기기 전에 정부가 주도권을 잡고 정리해줘야 한다. 이를 미루면 진보 진영에서 조문 얘기가 자연스레 나올 것이고 보수 진영에서 반발하면서 김정일의 악행을 보수 언론들이 싣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남남갈등이 격화되면 여야 싸움이 되고 정쟁화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국내 정치권이 김정일 사망을 남북관계 개선의 호기로 보는 게 아니라 김정일 사망이 국내 정치 파동의 근원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김정일과 만난 인연도 있고 하니 조의 표명을 하는 수준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 대통령이 하기 어렵다면, 박근혜로서는 이 대통령과 선을 그을 필요도 있고 비대위원장으로서 쇄신과 혁신을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말 한마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정부 차원에서 힘들다면 박근혜로도 괜찮다는 것인가.
김근식 : 이명박 정부는 지난 4년간 북한에 해온 일이 있어서 그런 기조를 떠나기 힘들 수 있다. 그런 기조를 버리길 바라지만 박근혜가 정당 자격에서 평범하게 조의나 유감을 표명하고, 한반도가 이 일을 계기로 평화롭게 갔으면 한다는 원칙적인 말을 할 수 있다.
김창수 : 우리 사회가 다원주의 사회기 때문에 북한 문제를 놓고 의견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건 다양하다. 하지만 양극단에서 충돌하는 상황으로 가서 그 극단이 중간의 여러 세력을 대표하는 방식으로 여론이 잘못 형성되면 문제다.
그렇기에 이 문제에 있어서 정부가 기준점을 잡을 필요가 있다. 북한이 외국 조문단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우리 정부에겐 부담을 덜어준 셈이다. 조문단 문제가 논란의 화약고가 될 수 있었는데 안 받겠다고 하니 극단적 논쟁으로 빠질 수 있는 상황은 예방됐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가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수준에서 표명했으면 한다.
프레시안 : 김정일 사망이 일종의 '북풍'이고, 결국 박근혜 위원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겠냐는 얘기가 은연 중에 나오고 있다.
김근식 : 민주당도 비대위를 구성했는데 과거 김대중 대통령 서거시 조문단이 왔으니 우리도 가야하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조의 표명 문제는 정부에 맡기고 당은 북한의 안정성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 남한에서 화약고 될 수 있는 문제를 치고나갈 필요는 없다.
김창수 : 내년 선거 국면에서 한반도 통일 이슈가 최대 이슈로 부각할 가능성이 있다. 이전까지 복지 문제나 양극화 문제, 사회정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였고, 이명박 정부에서 대북정책이 망가진 상황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평화통일이라는 헌법상 의무를 할 수 있겠느냐 정도였다.
이제는 김정일 사망 이후 종합적인 큰 틀에서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불확실한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의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이슈가 등장할 것이다. 또 최근 약화되어가던 흑색선전이 선거 국면에서 검증을 빌미로한 네거티브 선거로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각자가 김정일 사망을 보고 느끼는 소회는.
김근식 : 오늘 뉴스를 보고 여러 생각이 났다. 김일성이 1994년 사망하고 김정일이 최고지도자가 됐는데 아버지로부터 부채만 떠안아 어려운 시기를 겪다 해결을 못하고 사망했다. 17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해보려고 했던 일도 부시 행정부나 남북관계 경색 등 국제환경이 맞지 않았다.
북한을 정상화하고 개혁·개방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와 좌절을 겪었고 2012년 김일성 100주년을 계기로 강성국가를 만들어보겠다고 했지만 새해를 한 달로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문턱도 못 넘은 셈이 됐다. 17년 동안 하루도 편한 잠을 못자던 시기였을 것이다. 죽고 나서도 후계자에게 더 큰 숙제와 부채를 넘겨주고 갔다. 한반도의 안타까운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창수 :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백낙청 선생이 말한 분단체제론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 남한과 북한은 독립된 구조에 놓여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든 경제든 북한과 남한은 체제 차원에서 영향을 미친다.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충격으로 작용하면서 경제, 안보 불안으로 작용하듯 앞으로도 북한의 안정이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남한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북한의 체제가 현재 상황을 안정적으로 극복해 나야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현재 북한 상황에 대한 섣부른 예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을 부추겨 원하는 상황으로 진단하고픈 마음을 접고 냉철하게 북한 상황을 분석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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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ath of Kim Jong Il: Now 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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